고향땅이 여기서
제목 : 고향땅이 여기서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Wolesale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Highway 달리는 동안 이것 저것 안 불러 보는 노래가 없다.
초등학교 노래부터 팝송(사실은 Like a bridge over~ 같은 Old song)까지, 줏어 들은 창가(학도가)부터 내가 아는 최신곡까지(낭만에 대하여), 아니면 주일학교 노래부터 (돈으로도 못 가요) 복음성가를 거쳐 (가서 제자 삼으라) 찬송가까지 (하나님 나팔소리) 생각 나는 데로 계획없이 불러본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배운 '고향땅'을 자주 즐거이 부르곤 해왔는데 ...왠걸, 하나님께서도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만들고 다스리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평소에 말을 조심해야지 이거 뭐 함부로 고향 가고 싶다고 중알 거리다가 실제로 고향(한국)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으니...
에라 모르겠다. Business고 Wholesale이고 간에 다 잊어 버리고 고향에나 갔다 오자.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진달래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리어카 장사 떡볶이가 맛있는 내 고향으로 돌아가리... 하면서 이른 새벽 코리아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한국엘 가면 초등학교 친구들 보고싶어 동기회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이걸 두고 차마 기도 한번 한적 없건마는 고향에 도착하니 바로 그 주말 토요일에 초등학교 동기회가 열린다나. 원래 회칙에 정한 바로는 저번 달 둘째 토요일에 동기회를 열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이번달 이번 주말로 연기하는 바람에 내가 마침 참석하게 되었지.
동기 아이들은 이유없이 동기회 늦추었다고 불평을 늘어 놓다가 그 덕분에 캐나다 친구가 참석하게 되었다며 낄낄 거리기에 내가 속으로 여호와이레 인격의 하나님께서 요거까지 신경 써주시나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었지!
많은 옛 친구들을 여러해 만에 다시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짝사랑 했던 (이거 너무 조숙했구나) 경옥이와의 만남은 참으로 즐거웠지. 지금은 뭐 삼성생명에 다니는데 워낙 얼굴이 괜찮고 몸매도 아직 남아있겠다 말도 이쁘게 해서 그런지 고정고객을 많이 확보하여 월수 600~700만원 (CDN 8000~9000)씩을 받는다나, 휴~
내가 속으로 '그 돈으로 헌금이나 하지!' 해보지만 물어보면 그래도 늘 돈이 모자란단다 (Crazy!) 큰딸은 홍익 미대 다닌다나, 미술하는데 뭐 돈이 그렇게도 많이 든다고 엄살이니 ......!
누군 초등학교 때 크레용이 없어서 (물론 도화지도 없었지만) 그림 한장 제대로 그리지도 못했는데 뭐 레슨 받을 때면 주당 기 십만원씩 준다나! 거기에다가 자기 딸 Canada쪽으로 영어연수 보낼까 하는데 있을 곳이 없으면 우리집에서 먹여달라나.
내가 속으로 '미친 놈(Nyun), 내가 홍도 (이것 저것 아무런 생각.계획이 없는 녀석)인줄 아나 , 내가 왜 내 딸도 아닌 남의 족보(딸) 때문에 고생하겠노!' 하고 말았지.
경옥이와는 초등4학년 때 한 반(같은 반)이었는데 어느날 아침, 내 모르게 내 책상 속에 공책, 연필, 지우개 등을 살짝 넣어준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난 사연도 모르고 담임샘께 갖다 드렸다가 샘께서 눈치채시고선 아무 말씀 없이 내 책보(Bag)에 넣어주셨지......!
그런 경옥이의 착한 마음씨를 생각하면서 역시 동기 녀석이 운영하는 가요주점 (노래방 보다는 한수 높다고함)에 몰려가서 "야, 옥아 우리 4학년 때 즐겨 불렀던 노래 같이 불러보자"고 해서 Stage에 나가 Duet으로 불렀던 것은 4학년 때의 그많은 추억보다 잊을 수가 없지
옛날에 즐거이 지내던 일
나 언제나 그리워라
동산에 올라가 함께 놀던
그 옛날의 친구들
먼산에 진달래 곱게 피고
뻐꾸기 한나절 울어에는
그리운 옛날의 그 예기를
다시 들려주세요
그리고 헤어질때 우린 굳게 약속했었지. 절대 40대는 되지 말자고......다음에 만날 때도 우린 역시 39세라고...... 그래도 한세상 가라 시구려. 사노라면 머리엔 서리가 더욱 내리겠지만서도 마음은 언제나 태양, 아니 마음은 언제나 30대로 남아 있자고 말이다.
이거 세상 이야기가 너무 길었구나...! 이제는 막을 바꾸어 전공[?]으로 넘어갈까 보다. 한국에 머무는동안 평소 마음으로 섬겨온 맹인교회 들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중에 딱 하나 포항맹인교회(실로암 교회)를 찾아간 스토리다.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물어 물어 시내버스를 탔는데(택시비 아껴서 헌금해야지) 어디에 내려야 할지 확실히 몰라 안절부절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내려서 다시 물어서 타자' 하면서 내렸더니 내려야 할 바로 그곳이었다.
바로 초면의 K전도사님을 만나서 주안에서 위로를 나눈후, 함께 봉고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성도[맹인]들을 가득 태워서 교회로 돌아와 수요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맹인(시각장애인 이라고 부름) 20~30여명에다 정상인(정안자라 부름) 서너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맹인들이야 으레히 맹인 교회에 나오겠지만 정상인이 맹인 교회에 출석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참고로 맹인교회에는 반드시 정상인이 20~30%정도는 나와야 맹인들과 교회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전도사님께서 예배 중에 뜻밖에 나에게 대표기도를 시키시기에 나가서 기도를 하였더니 눈물이 계속 나와서 기도를 못하였다. 내가 우니 맹인들도 따라서 울고 있었다. 누가 맹인들을 위하여 울어주나?
포항시내 기성교회가 수백 곳도 넘지만 맹인교회를 돌아보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데 멀리 캐나다에서 온 교포가 저들을 위해서 울어주니 함께 울 수밖에......
그런데 남자는 태어날 때 울고, 영장(입영통지서)받을 때 울고, 부모님 돌아가실 때 울고... 해서 일생에 세 번 운다고 했는데 왜 기도하면서 눈물이 나오는지요?
성령 체험 없이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눈물은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심령을 감동시키시면 찬송가를 불러도 눈물이 나오고, 기도를 해도 나오고, 말씀을 들어도 나온다. 차범근 선수는 울산 양정교회에서 새벽기도 때마다 눈물을 보인답니다.
예배 끝나고 피아노 대리점을 새로 개업한 젊은 성도(정상인)가정에 심방을 따라 가게 되었는데 그 젊은 부부가 영화 배우처럼 너무도 잘생긴 미남,미녀 부부이면서 맹인들을 섬기는 모습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가게 (피아노 전시장) 뒤쪽 부속 살림방으로 다같이 들어갔는데 맹인 집사님들이 앞도 보지 못하면서 "방도 매우 넓다" "방도 훤하네 이만하면 살림해도 되겠다" "싱크대만 있으면 되겠다" (실제 싱크대가 옆에 놓여 있었음)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아픔을 느꼈다.
사실은 한국 가서 눈 수술(라식) 받으려고 생각하였는데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방문했던 맹인교회 여러 곳에 나누어 헌금하고 와 버렸다.
나보다 훨씬 못한 맹인들도 감사하고 사는데 정상인인 내가 시력 조금 나쁘다고 못살겠나, 차라리 저 분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성령께서 심어주시니 순종할 수밖에...
그나 저나 이제 캐나다 돌아가서 Business가 더욱 잘되어야 될 텐데... 그래야 우리 순복음교회도 섬기고, 남으면 한국에 맹인교회도 섬기고, 선교비에도 쓰고, 그래도 남으면 차비 마련하여 초등학교 친구들일랑 가요주점(노래방)에도 끝가지 따라 다닐 수 있을텐데...
(조슈아는 예수 믿는다면서 갈데 안갈데 다 가다니, 사꾸라 같은데... 기회 있으면 자아비판 많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