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이곳 교민잡지인 `주간시티`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의 Freshman 시절 이야기를 재밋게 써봤어요.
읽는 이마다 은혜되시길 기원합니다. [글쓴이; 조슈아리]
오늘은 3월 5일, 한국에서는 일제히 입학식과 함께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몽매(夢寐: sleeping & dreaming)에도 그리던 대학... "이제는 지겨운 공부가 끝났다, 해방이다, 자유다!" 하면서 입학식을 기다렸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신입생은 전원 입학식 날부터 정해진 색깔과 모양의 교복을 입고 등교해야 된다나...
당시는 유신(박정희 대통령) 말기라(end) 정부에서 대학생들의 반정부 데모를 막기 위해 입학 초기부터 때려 잡으려고(기를 꺾으려고) 온갖 묘책을 쓰던 중에 있었고 교복 입지 않으면 교수가 출석 인정을 해주지 않도록 되어 있었으며 교수 또한 반드시 강의시간 마다 출석을 부르도록 지시받고 있었기에 우리로선 꼼짝 없는 고등학교 4학년짜리 싸구려 대학생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한 교련(군사훈련)이 엄청나게 강화 되어서 주당 4시간씩 논산훈련소 수준에 버금가는 군사훈련을 매주 받았는데 교육시간에 복장이나 태도가 불량하면 교관(대위)이 언제든지 출석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거기에다 결석 2회(4*2=8시간)만 하면 즉시 입영통지서가 날라 오도록 되어 있기에 언제 군대로 끌려갈지 모르는 평화 속의 긴장이 계속 되었으니....
어떤 정신없는 녀석들은 벤치에 않아 담배 물고 잡담하다가도 교관이 지나가면 벌떡 일어나 ROTC도 아니면서 "충성!"을 연발할 정도니 Campus 분위기가 이거 뭐 김일성 대학쯤 되었다고나 할까....
입학식하고 얼마 지나서 사대(Collage)의 고교 선배들이 신입생환영회를 해주는데 장소는 큼지막한 짜장면집, 짜장면 1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2차는 막걸리 일 잔씩 돌리면서 안주는 두루치기(된장 두부찌개?). 술이 조금씩 되어서는 모두들 젓가락 두드리면서 당시 잘나가던 '고래사냥(송창식)'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에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아~ 떠나자 동해바아-다로오~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오~오오오~
신화처럼 소리치며 고래 잡으러어~어어어~
(그목소리 가지고 복음성가나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 미련둥이야!)
어느 곳에나 짜장면집 긴 식탁 모서리는 젓가락 자국이 무수히 패여 있었는데 나중에 가라오케(자동 반주기) 나올 줄을 그때는 몰랐었지....
술이 알쏭달쏭 되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한 시커먼(black) 선배가 일어나서 "자 우리 사대 교가 부르자!"하기에 '대학에도 교가가 있나' 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웬걸 젓가락 소리에 '섬마을 선생님'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
주간시티 독자들을 위해서 잠깐 가사와 해설을 적어볼까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海棠花:sweet brier는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잘 자란다고 해요.)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3월달에 신규 발령 받아왔다나. 그런데 진짜 '총각'인지 어떻게 알지?)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아따! 스무 살도 안된 계집애가 벌써부터 '끼'가 있기는...
바치긴 무얼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뭐 한번 그랬는거 갖고...영 부담스럽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고마 가지 말고 살림하자는 뜻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내친 김에 2절까지 적어보자.
구름도 쫓겨가는 섬 마을에
(원래 구름은 바다에서 생겨서 육지로 이동합니다-유식하기는 !)
무얼 하러 왔느냐 총각 선생님
(연애하러 왔지 머! 그리고 나 사실은 대학 때 과(科) 후배 계집
애 하고 좀 놀았걸랑...)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별빛이 총총한 해변에서 "선상님 싸랑해요!"를 듣는다!)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이거 어떡해야 되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울엘랑 가지를 마소, 가지를 마아아소~~~
이 노래는 당시 가사가 너무 퇴폐적이고 특히 교직(교사)에 대한 천박한 인상을 심어준다 해서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사대생들이 먼저 '교가'라고 애창하고 다녔으니 반항심리에서 나온 irony일테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름방학 때는 전국 대학 1년생들이 모두 일주일간 병영집체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문무대인가 어딘가 하는 곳에 입영한다고 TV에까지 입소식을 중계해주고 요란했었지만 우리 지방에서는 뉴스도 타지 못하고 향토 50사단에 들어가서 글자 그대로 빡빡 기었다(죽도록 고생했다).
6일간의 훈련이었지만 너무도 고되어서 6일 후 퇴소하고 나오니 천지가 새롭게 보이고 한 몇년은 흘러간 기분이었다. 한 친구 녀석은 6일 동안 대변이 나오지 않았는데 집에 가서 누니까 까만 염소똥 같은 것이 똑똑 떨어지더라나.... 똥까지 다 타서 없어져 버릴 정도로 호되게 훈련시킨 것은 유신 정귄의 '대학생 데모방지' 작전이었다.
나중에 필자가 입영통지서를 받고 논산 훈련소에 가서 5주간 신병훈련을 받게 되는데 차라리 50사단에서의 6일간 집체훈련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추억되고 있을 정도니....
자 문제는 이제부터다.
"주님 대학에만 합격시켜 주시면..."하면서 심지어 새벽기도까지 나가서 부탁부탁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붙고 나서는 너무도 급속도로 주님을 잊어 가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 '똥누러 갈 때만 바쁘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다.
대학 들어가서 자취방 잡아놓고 각종 환영회 마치고 한가해져서는 그래도 신앙생활하던 가락이 있어서 주일날 가까운 교회로 어슬렁어슬렁 가보니 마침 신학교를 갓마친 젊은 전도사가 교회를 시작하고 계셨는데 새 신자 하나 왔다고(그것도 대학생이!)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그뒤 내가 점점 주일성수를 게을리 하니까 몇 번이나 자취방에 심방 오셔서 기도해주고 가셨지만 말씀은 들을 귀는 점점 막혀져가고....
심지어 내가 속으로 '저 전도사 내보다 수학정석 덜 풀어보았을 텐데...'하는 싸구려(값싸고 천한)교만이 자라기 시작하고... 거기에다 각종 모임(회식), 동문회, 서클, 행사...등에 쫓아다니면서 술에 취하고 담배에 찌들고 화투(또이또이 노름)에 멍들고....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따라 삼갈 것이니다 (시편 119: 9)]라고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2학기가 되어서는 아예 교회에 발길을 끊고 말았다. 기도할 것(제목)도 별로 없고 예수님 없이도 살 것만 같았고 나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 혼자 몽땅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스스로 좋다하고 시작하다니....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도전과 하나님의 나에 대한 응전(Challenge & response)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 대한 철저한 간섭과 섭리로 인해 필자는 그 뒤 행한 인생의 수고가 '헛수고'로 끝나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였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한다면 주간시티 몇년동안 쓰고도 남음이 있겠다.
끝으로 잠깐, 필자는 한창 피끊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청춘예찬'이 아니라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면서 [너는 청년의 때 곳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이 말씀을 외쳐주고 싶다. `끝`
꾀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일거 주셔서 감사합니다.[단 일찌안코 그대로 쭉 내려왔으면 다시 끌고 올라가서 일거야됨! [must+ have to!!]
다가오는 주일엔 꼭 데이트 약속 만들지 말고 교회로 오세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면[가정법 현재+미래의 짬뽕!], 하나님께서 가장 멋진 이성을 배우자로 주실테니 데이트엔 아예 신경 꺼버리세요!!! 몬져 주의 일부터!!!
[청년유학생 담당 조슈아리 씀 ]